세상이 바뀐 듯 해도 여전하네요 : 아빠의 형제 및 남자 친척에 한해서만 가능한 장례휴가, 아셨나요?

세상이 바뀐 듯 해도 여전하네요 : 아빠의 형제 및 남자친척에 한해서만 가능한 장례휴가 




저는 외동딸로  자랐고  하던 일도 특별히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당하거나 급여에서 큰 차이가 나지 않는(물론 이것도 병역에 대한 가산점 부분은 빼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 분야의 일을 했기 때문에 차별이라는 건 잘 모르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지인들의 이야기나 맘 카페에서의 관련 하소연 등을 접해보기 전까지는 정말  이제 남녀가 평등한 세상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제 나이가  그렇게 많지 않음에도  성장하는 동안  남동생이나 오빠에 비해 차별을 당하며 자라온 친구들이 생각보다 많고 친하게 지내는 훨씬 어린 동생들도 그렇게 자란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듣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임신과 출산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자신이 하던 일을 꾸준히 하기 어려워지고 다시 돌아가도 일에 전념하기 어려운 여러가지 제반적인 문제들까지 하나하나 따져보면  세상은 아이들이 너무 없다며 아이를 낳아 키우라고  하면서도 이제 여자도 돈을 잘 벌어야 한다고 하는데 정작 육아와 업무를 다 할려고 하면 회사 조직에서는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런  이중적인 잣대 때문에 오히려 과거보다  현대의 여성은 더 힘들어 진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옛날에 비해서는 남녀 구분없이  공부시키고  웬만한 전 분야에  남녀가 같은 수준으로 진출하고 있습니다.  부모들의 인식이 많이 바뀌어서 오히려 딸을 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부모의 윗 세대인 조부모들은 며느리가  임신하면  당연하다는 듯 아들이길 기원하거나  딸을 낳은 경우 둘째를 꼭 낳으라고 강권하는 등,   오래된  관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자신의 부모에게 성장하는 내내 영향을 받은 탓에  젊은 세대임에도 보수적인 가치관을 지닌 남성들도 생각보다 많고 이는 부부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남녀가 기본적으로 다르고 그 다름으로 인해 더 강점인 부분에 대해서는 오히려 차별적으로 대우해주는 것이 옳을 때도 있지만 그저 성별이 남자라는 이유로 당연히 대우 받고 여자라는 이유로 당연히 차별받는 관행은 없어져야 할 것입니다.  다가오는 명절, 아무리 세상이 바뀌었다고 해도  명절에 온 친척들 다 모이면  남자들이 전 부치는 집이나 남자들이 설거지 하는 집안이 몇 이나 될까요?  요즘 유행하는 SNS인 스레드에는 고작 30대 아이 엄마가 항암치료 중인데도 시어머니가 김장이다 명절이다 온갖 일을 당연하다는 듯이 요구한다는 하소연에 다들 크고 작은 자신의 유사경험담을 쏟아낸 글을 보기도 했습니다.  아이들 키우며 일 다니는 며느리에게  '우리 아들은 냉장고에 있는 음식은 못 꺼내 먹으니 다 차려놓고 출근해라.'라고 한다든지,  심한 경우는  툭하면 트집을 잡고  이년 저년 욕을 한다는 사례도 있었습니다.  다행히 저는 그런 환경이 아니지만 그토록 많은 여성들이 저와 같은 세대임에도  옛날 할머니들이 겪은 서러움을 그대로   당하고 살고 있다니, 그런 환경 속에서 그 집 남편들은 도대체 뭘 하고 있는건지 참 답답하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세상이 바뀌었다고 해도 명절이 다가올 때면 여자들의 스트레스는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친정에 가면 운전 좀 했다고 사위인 남편은 드러누워 있고 친정에 가서도 딸인 여자들은 엄마가 안 쓰러워 같이 일하게 되고 ,  남편은 자기 본가에 가면 자기 본가라고 또 드러누워 있습니다. 며느리인 여자들은 이제 시가에 가서 더 많은 일들에 시달려야 합니다. 세상이 변하려면 한참 멀었습니다.  제사든 명절이든 고통 속인 것은 여자들입니다.  언제 즘 어느 날이 다가와도 아무런 생각 없이 친척들을 만나는 기쁨만  느낄 수 있을까요?  사실 외가, 외조부모라는 표현도 오래전 여성이 출가외인이라 여기며 결혼한 후 원래 본가를 외가로 규정하고 자주 드나들지 못하게 했던 시대착오적인 표현인데도 여전히 그 단어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 집은 아이에게  양가 어머님들을 사는 지역 기준으로 '서울 할머니' , '세종 할머니'라고 말하게 하고 있습니다. 이 밖에도 여성의 형제자매들에게는 위아래 무관하게 하대하는 식의  처형, 처제라고 하거나 이름을 부르기도 하면서 남성의 형제자매에게는 남편과의 위아래를 막론하고  도련님, 서방님, 아가씨 등 모두 존칭인 것도 차별적인 호칭에  해당합니다.  


  
오늘 자 연합뉴스 기사에 따르면  취재 결과  어느 대기업의 회사 내규에  백숙부(부친의 남자형제)상에 대한 휴가 및 경조사비 규정은 있지만, 부친의 여형제(고모)·모친의 형제(이모·외삼촌)에 대해서는 규정이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대기업 대다수가 유사한 내규를 갖고 있다고 합니다. 지난해 매출액 상위 10대 민간 기업의 장례 휴가 규정 을 살펴본 결과, 이 중 7개 기업은 고모·이모·외삼촌상에 대한 장례 휴가를 지급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반면 백숙부상에 대해서는 평균 2∼3일의 휴가를 지급했습니다.(10대 기업은 기업데이터연구소 CEO스코어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등으로 집계한 결과임) 10대 기업 중 1개사는 백숙부·고모·이모·외삼촌상에 대해 모두 휴가를 지급하지 않았고, 2개사는 이들에 대해 모두 동일한(1∼2일) 휴가를 지급하고 있었다.국가공무원 복무규정에도 백숙부·고모·이모·외삼촌상에 대해서는 모두 휴가가 지급되지 않는 식으로 통일성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차별을 할 바에는 자신의 친부모와 친조부모 외조부모 외에 모든 일가 친척의 장례에는 장례휴가 및 경조사비 지원을  하지 않는 것이 차라리 나아보입니다.  



심지어 장례 휴가 마저 차별이 여전하다는 거 아십니까?   오늘 올라온 기사 중에  회사에서 장례휴가를 쓸 때 큰 아빠 등 아빠의 남자 형제 및 남자 친척의 장례에는 휴가를 쓸 수 있지만  이모 등 외가쪽 친척의 장례휴가는 쓸 수 없는 회사가 많다고 합니다.  사람들에 따라 가족의 형태는 다양합니다.  저도 아빠 없이 엄마랑 둘이 오랜 세월 살면서 이모가 저에게 제2의 엄마이자 아빠의 자리를 대신해주어서 이모에 대한 애정이 각별합니다.  일찍이 외할머니가 키워주거나 고모나 이모가 자신을 키워준 가정사를 가진 사람들도 많습니다.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들의 수상소감에서도 우리는 그런 사례를 많이  듣곤 합니다.  다양한 가족형태를 외면한  차별적인 장례 문화는 개선될 필요가 있습니다.  



2013년 인권위는 기업들이 친조부모상과 외조부모상에 대해 경조휴가 및 경조비 지급 차등을 두는 관행을 개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밝힌 바 있습니다. 당시 기업들은 인권위에 "외조부모상을 당한 직원은 외손이라 친손과 달리 직접 상주 역할을 한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차이를 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만, 요즘은 비록 조부모들의 여전한 아들 선호사상은 있을지라도 부모 자체는 성별과 관계 없이 1∼2명의 자녀만 출산하는 등 가족 구성이 변했기 때문에 제사 자체도 간소화하거나 하지 않는 집들도 많고 점점 부계 혈통의 남성 중심으로 가정의례를 치르지 않는 가족들이 늘어나고 있음에도 차별적인 관행을 유지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이미 부계 혈통 중심의 호주제가 폐지된 지 8년이 지났고, 대한민국 헌법 제36조에 따르면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고 씌여있습니다. 물론 기존의 가치관이 잔존한 상태에서 새로운 가치관이 덮어질 때  사회는 혼란스러울 수 밖에 없습니다.  남녀가 평등하지 않은 것이 당연했던 역사가 너무 장대했기 때문에  고작 현대사회 백년  이백 년 정도의 변화로는  여전히 혼란스러울 수 밖에 없는 상태인 것입니다.  앞으로  더 많은 세월  동안 지속적으로 사회 및 정치적 차원은 물론 개인적 차원에서도 꾸준히 노력하여 비교적 빠른 미래에 성별과 상관없이 모두가 행복한, 우리 아이들과 후손들은 보다 더 완전한 평등한 사회에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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