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노레 드 발자크 '미지의 걸작'을 읽고, 창작과 예술을 향한 광기 가득한 열정에 대하여, 감각적인 디자인으로 보석 같은 고전을 발굴하여 출판하는 녹색광선

오노레 드 발자크 <미지의 걸작>을 읽고

창작과 예술을 향한 광기 가득한 열정에 대하여 




 『미지의 걸작』을 처음 집어 들었을 때, 솔직히 그 두께와 발자크라는 이름의 무게가 조금 부담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책장을 넘기며 점점 그 속에 빠져들었고, 프렌호퍼의 광기 어린 집착을 보면서 저 또한 다른 플랫폼에서 연재를 하고 있고 훗날 소설 등의 창작물에도 뜻을 가진 작가로서의 완벽하게 표현하고 싶은 욕망과 그로 인한 좌절에 많은 공감을 하였습니다. 예술가라면 또는 진정한 꿈이 있다면 이 정도의 광기 어린 열정이 있어야 하는 것일까요? 우리들이 자기의 꿈이라고 말하는 어떤 것들이 실제로는 그 만한 열정을 쏟아부을 정도로 진정한 꿈인지, 그 꿈의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 생각해보게 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술에 대한 집착, 실제 발자크의 생애와 비교

소설 속 프렌호퍼는 살아 숨 쉬는 예술을 창조하려는 열망에 사로잡힌 화가입니다. 그의 작업실은 마치 어떤 신비로운 성역처럼 묘사되는데, 이는 실제로 이 소설을 쓴 작가 오노레 드 발자크의 모습과 매우 유사합니다. 발자크는 사업을 하는 와중에 심야에 집중해서 글을 쓰던 작가로 수도사 복장을 하고 매일 커피를 50잔씩 마시며 늦은 밤부터 작업을 시작해 다음날 오후가 될 때까지 몰두하곤 했습니다. 소설 속 프렌호퍼가 “아직 완벽하지 않다”며 그림을 수정하고 또 수정하는 모습은 발자크와 비슷할 것입니다. 프렌호퍼와 발자크의 집착은 비단 그림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창작의 모든 분야에서 느껴질 수 있는 보편적 고뇌입니다. 발자크는 20년간 97편의 작품을 남겼고 51세의 젊은 나이에 카페인 중독 증상으로 사망했습니다. 그의 작품들 중 <인간극>은 그를 유럽 사실문학의 창시자, 유니버스 개념을 확립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훗날 귀스타브 폴로베르, 마르셀 푸르스트, 찰스 디킨스 등 많은 작가들에게 존경 받고 영향을 미친 대문호입니다.  


그렇다면 발자크는 타고난 예술인이었을까요? 여기서 우리는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는 평민의 가정 출신임에도 늘 귀족에게 붙이는 드(de)를 넣어 '오노레 드(de) 발자크'라고 불러달라고 호소한 작가입니다. 그의 원래 꿈은 작가가 아니라 어떤 일을 해서든 유명해지고 부자가 되는 것, 어느 분야 자체에 대한 열정보다는 무엇을 하든 그 성취와 풍요로움이 목적이었던, 사실 예술인의 마인드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많은 사업과 분야에 도전했지만 계속 실패하자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사업을 하고 글을 쓰는 내내 항상 여성 후원자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어가며 속물적인 삶을 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쓴 글들이 그에게 결국은 그가 원한 명성과 부를 얻게 해준 것입니다. 



사랑, 그리고 예술의 희생

질레트, 푸생의 연인이자 모델로 등장하는 그녀는 프렌호퍼와 푸생의 욕망 사이에서 희생되는 여인입니다.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의 자아를 내어 놓지만, 결국 그들이 원하는 결과를 얻지는 못합니다. 작가들 중에 많은 글을 쓰고 몰두하느라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서 시간과 마음을 빼앗고, 때로는 그들을 무시하며 자기만의 세계에 빠지는 경우는 참 많습니다. 발자크는 심지어 자기의 작품생활을 위해 사랑을 이용하기까지 했던 작가입니다. 프렌호퍼와 푸생이 질레트에게 강요한 희생은 창작이 자신과 타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질문하게 만듭니다.



예술의 고뇌와 한계

소설의 클라이맥스는 프렌호퍼가 완성했다고 믿었던 그의 걸작이 단순한 색정의 혼란으로 드러나는 장면입니다. 이 부분은 예술가들이 작품을 내면서 가장 두려워하는 순간, 즉 자신의 작품이 사람들에게 아무 의미도 없지 않을까 하는 공포를 떠오르게 합니다. 작가들 또한 자신의 글이 독자들에게도 같은 울림을 줄 것 인지에 대해서 늘 의문을 갖곤 합니다. 프렌호퍼의 절망은 단순한 실패가 아니라 예술가라면 누구나 마주하는 내면의 깊은 외로움입니다. 또한 프렌호퍼가 자신의 그림을 ‘신성한 비밀’로 여기고 질레트가 사랑으로 인해 희생을 선택할 때, 창작을 위해 포기한 것들과 그 대가에 대해 생각하게 합니다. 창작의 열망이 더 단단해지는 동시에 위험해지는 예술인의 삶에 대해 발자크 개인의 삶이 많이 반영되어 더욱 사실적이면서도 발자크 특유의 필력으로 흥미롭게 펼쳐집니다.



책을 덮으며

발자크는 워낙 대문호이기 때문에 그의 대표작들은 이미 많이 유명합니다. 『미지의 걸작』을 출판한 '녹색광선'출판사는 고전 문학 중에 잘 알려지지 않은 숨은 보석 같은 작품들을 발굴하여 세련되고 감각적인 디자인으로 출판하는 것으로 최근 각광 받고 있는 1인 출판사입니다. 최근 크리스마스 전에 출판한 새빨간 표지와 치명적인 사랑 이야기가 담긴 『셰리』의 인기도 대단합니다. 빌려 읽기 보다는 소장하고 싶거나 선물하고 싶은 욕구를 불러 일으키는 디자인과 흔하게 읽히지 않은 고전에 대한 도전 등 문학적 허영심을 제대로 자극하는 출판 기획이 돋보입니다. 저 같은 애서가들에게는 아주 반갑고 귀한 출판사라고 할까요? 앞으로 녹색광선 시리즈를 하나씩 독파한 후 자주 글을 올릴 예정이니 기대해주시기 바랍니다.





『미지의 걸작』은 때로는 완벽을 추구하는 것이 얼마나 허무한지를, 때로는 그 추구가 삶에 얼마나 깊은 흔적을 남기는지를 가르쳐줍니다. ‘완벽’을 넘은 ‘진실’에 대해서 생각하게 합니다. 작가로서의 꿈을 꾸면서 제가 활동하는 플랫폼 안에서 다양한 작가들을 만나곤 합니다. 그들의 글은 물론 여러 작가들의 책을 읽으면서 완벽한 글보다는 누군가의 마음을 울리는 진솔한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을 배웁니다. 프렌호퍼처럼 자신의 작업에만 몰두하다 파멸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 소통하며 함께 성장하는 글쓰기를 하고 싶다는 다짐을 하게 됐습니다. 『미지의 걸작』은 단순히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 뿐 아니라, 무언가를 창조하며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줄 것입니다. 



이미지 출처 : 알라딘 교보문고, 숙명여대 공식 블로그(녹색광선 박소정 대표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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